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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0억 달러 빚더미에 3개월치 재고 쌓여 할인 경쟁과 재고 누적으로 수익성 악화 판매 부진에 정부 지원도 한계 맞아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BYD가 수년간의 폭발적 성장 이후 처음으로 판매량 감소와 함께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았다. 과잉 공급, 유통망 붕괴, 부채 급증, 품질 논란까지 겹치며 ‘제2의 헝다 사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전기차 시장을 이끌어온 중국이 과열 경쟁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다 할인은 '독 마시는 격'
5일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BYD의 7월 판매량은 전년 동월보다 0.6% 늘었지만, 생산량은 0.9% 줄어 첫 역성장을 기록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부문은 더욱 심각해 판매량이 22.6%, 생산량이 24.6% 각각 급감했다. 이는 올해 1월 이후 지속해온 상승세가 꺾인 첫 번째 사례로, 시장에서는 과열된 가격 경쟁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BYD는 지난 5월 저가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가격을 최대 30%까지 할인하면서 가격 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후 리오토와 니오 등 주요 전기차 브랜드들이 줄줄이 할인에 나섰고, 중국 정부는 지나친 경쟁 자제를 경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BYD의 위기는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회사는 현재 22개 모델에 최대 34%까지 할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재고는 3.2개월치 생산량에 이른다. 부채 규모는 4,280억 위안(약 82조5,000억원)으로 연간 매출 5,400억 위안(약 104조1,000억원)의 80%에 육박한다. 중국 5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체리자동차(Chery Automobile) 최고경영자(CEO)는 "최대 34%의 할인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급업체 대금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BYD는 평균 275일 후에야 공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제조업체 평균인 182일의 1.5배며, 서구 경쟁업체의 90~100일보다 거의 3배 길다.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1일부터 공급업체 대금을 60일 안에 지급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정을 시행했으나, BYD는 여전히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中 정부, 과잉생산 방지 위해 보조금 삭감
과열 경쟁과 함께 중국 정부의 보조금 삭감도 BYD 판매량 감소를 부추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 격인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2016~2020년도 신에너지차 보급·활용 보조금 정산 심사 예비 공시’를 발표했다. 공시에서 BYD는 신청 금액보다 1억4,200만 위안(약 274억원) 줄어든 금액을 지원받았다. 공업정보화부는 보조금 감액의 사유로 증빙 자료 미흡, 운행 데이터 미제출, 보조금 기준 미달 등을 꼽았다.
중국 정부가 신에너지차 보급을 위해 지급한 보조금 정산 결과를 발표한 것을 두고 현지 매체들은 “일부 기업들의 ‘보조금 의존증’을 방지하기 위해 신에너지차 보조금에 대한 조정을 시행하는 것의 일환”이라고 짚었다. 보조금 지원을 통한 전기차 산업 육성이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이제 보조금 의존에서 벗어나 경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서 보조금이 문제가 돼 온 것을 의식한 조치로도 읽힌다.
그간 중국의 보조금 정책은 상황에 맞춰 변화돼 왔다. 2017년부터는 차량 주행거리, 에너지 효율 등 기술적 요소를 기준 삼아 지원 요건을 대폭 상향했고 2019년에는 보조금은 줄이고 관리·감독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편됐으며 2020년에는 더욱 구체적인 보조금 제한 조치가 도입됐다. 이에 대형 전기차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 축소를 예상하고 기술 자립과 해외 진출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수정해 왔다. 한 전기차 기업 고위 관계자는 “시장의 적자생존 법칙에 따라 지능화 기술 등 제품의 핵심 경쟁력을 향상시켜 우리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보조금 대신 기업의 진짜 실력으로 시험대에 오를 차례라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유통망 붕괴·신뢰 하락
유통망 붕괴도 BYD의 위기를 가속하고 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곳곳에서 BYD 공식 딜러들의 폐업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는 거액의 자금을 들고 잠적했고, 출고·정비·소프트웨어 연계 서비스도 중단된 상태다. 한 현지 관계자는 “과거 통합 서비스 체계를 자랑하던 ‘BOYS’ 딜러조차 더는 운영되지 않는다”며 유통 시스템 전반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BYD의 부채가 8,000억 위안(약 155조원)에 이른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이는 공식 발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치로, 시장과 소비자의 체감 위기를 반영한다.
차량의 품질 논란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일부 정비사들은 BYD 대표 모델인 ‘친(Qin)’과 ‘당(Tang)’의 하부 구조가 충격에 취약하며, 기준 이하의 소재가 사용돼 사고 시 큰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휠이 꺼지거나 링크가 파손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불만도 늘고 있다. 조립 품질 문제로 스티어링 휠 마감재가 벗겨지거나, 패널 뒤틀림, 러버 부위가 붕괴되는 등의 하자가 1년 미만 차량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차를 중고차처럼 유통하는 행태까지 발생하면서 중고차 시장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한 딜러는 “신차 가격이 급락하다 보니 주행거리가 0km인 차량을 중고차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차량의 가치가 1년 만에 반토막 나면서 소비자 신뢰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술력의 상징이던 블레이드 배터리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부 차량은 5만km 주행 시점에서 배터리 건강도가 80% 이하로 떨어졌고, 10만km 이상에서는 70%대로 급감한 사례도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BYD가 지나치게 빠른 성장을 추구하면서 품질을 희생한 결과”라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