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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 성능 가르는 공조
수랭 방식 에너지·소음·부지 이점
해양 인접-모듈 분산-수중 운영

고성능 인공지능(AI) 서버의 발열 문제가 데이터센터 산업 전반의 냉각 기술 전환을 촉진하는 모습이다. 국내외 빅테크와 통신사들은 기존 공랭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앞다퉈 수랭 방식을 도입 중이다. 그중에서도 서버를 직접 액체에 담그는 액침 방식은 운영 전력 소비 절감과 뛰어난 에너지 효율로 주목받고 있다.
AI 학습·추론 서버에 GPU 밀집도↑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통신사들은 기존 공랭식 냉각 방식을 대체할 액체 냉각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통신사는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31일 경기 안양 평촌2센터에서 액체 냉각 기술을 시연하는 실증(PoC) 행사를 열고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목표로 기존 공랭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액체 냉각 기술과 AI 기반 운영 최적화를 위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관리 개발(DCIM)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내년 하반기 준공 예정인 파주 AI 데이터센터도 액체 냉각 기술을 적용한다는 설명이다.
SK텔레콤이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2027년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구축하는 국내 최대 규모 AI 데이터센터 역시 액체 냉각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지난 2023년 통신 3사 중 가장 먼저 액체 냉각 기술 검증을 마친 바 있다. KT 역시 지난해 8월 자회사 KT클라우드를 통해 데이터센터 열관리 기술인 액침 냉각의 기술 검증을 완료한 상태다.
이들 기업이 경쟁적으로 액체 냉각 기술 도입에 나서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연산 부하로 인한 고열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엔비디아 블랙웰 등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기존 공기 냉각 방식만으로는 발열 억제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액체 냉각 기술은 서버 장비의 열을 액체를 이용해 직접 제거하는 방식으로, 공기 냉각 방식과 비교해 효율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비용과 유지관리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액체 냉각 시스템은 초기 도입 비용이 높고, 냉각수 관리와 누수 방지 등 유지보수에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 통신사는 일부 시설에 시범 적용하는 형태를 택하고 있으며, 전면 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 중이다. 아울러 표준화된 설비 기준이 부족한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기술적 효율성은 입증됐지만, 상용화 단계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많은 셈이다.
바닷물 활용 냉각 방식 급부상
AI 성능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데이터센터 발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한 과제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찰스 리앙 슈퍼마이크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행사에 참석해 “최근 업계 최대 현안은 AI 서버의 발열 문제”라고 짚으며 “냉각 기술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실제 AI 연산용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현장 대비 최대 10배의 전력을 소모하며, 이 중 약 40%가 냉각에 활용된다. 데이터센터의 최적 온도는 섭씨 20~25도로, 이 수준을 벗어나면 운영 효율성은 급감한다.
기존에는 팬과 에어컨을 활용한 공랭 방식이 업계 표준으로 활용됐다. 외부 공기를 내부로 빨아들여 뜨거운 공기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단가가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해 널리 쓰였다. 하지만 외부 온도에 따라 효율에 차이가 크고, 냉각 효율 또한 일정 수준을 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빅테크는 서늘한 기후를 찾아 데이터센터를 세우기도 했다. 메타는 스웨덴에, 구글은 핀란드에 각각 데이터센터를 보유 중이다. 그러나 AI 연산 열량은 북유럽의 자연 냉각 조건 속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며 공랭 방식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에 따라 수랭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서버 장비 주위에 냉각수 배관을 설치해 열을 직접 흡수하고, 열교환기를 통해 다시 냉각된 물을 순환시키는 구조다. 미국 냉각장비 업체 버티브는 “수랭식은 기존 공랭식 대비 전력 소비를 18%까지 절감할 수 있다”며 올해 들어 주문량이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업계가 차세대 냉각 솔루션으로 본격 전환 중임을 시사한다.
수랭식과 함께 액침 냉각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증류수를 사용하는 수랭식과 달리 열전도율이 높은 특수 액체에 서버를 직접 담그는 방식이다. 물리적 손상 없이 열을 빠르게 흡수해야 하는 탓에 기술 개발의 난이도는 높지만,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유지비용이 가장 낮은 방식으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8년 스코틀랜드에서 액침 냉각 방식의 데이터센터 ‘네이틱 프로젝트’를 시도해 성공했지만, 내부 사정으로 추가 프로젝트는 추진하지 않고 있다.

액체 냉각→해양 냉각, 국가별 실증 경쟁 본격화
그러는 사이 중국은 해저 데이터센터 실증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 기업 하이랜더는 연내 하이난 인근 해역에 6만8,000㎡ 규모의 해저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100개 이상의 모듈을 수심 35m에 배치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하이랜더는 연간 전력 1억 킬로와트시(kWh) 이상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곧 에너지 절감과 공간 효율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만 해저 환경은 유지보수와 접근성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하이랜더는 이런 제약을 고려해 모듈형 구조를 채택했으며, 개별 모듈의 설치와 교체가 용이하도록 설계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또 외부 충격과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방수 설계와 내구성 보강에도 심혈을 기울인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초기 투자 비용은 다소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가세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은 지난 2022년 시작된 ‘해저공간 창출 및 활용기술 개발’ 1차 사업을 통해 울산시 울주군 나사리 전면 해상에 들어설 해저공간 플랫폼의 개념설계를 마치고, 해당 공간에 설치될 수중 데이터센터의 냉각기술 검증을 위한 서버 확보에 나선 상태다. 올해 본격적인 설치에 돌입한 이번 프로젝트는 2027년 완공 예정으로, 성공하면 해저 데이터센터로는 국내 최초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