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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역사상 '최장수 CEO' 기록 세워 AI 경쟁에서 밀리며 차세대 제품 개발 지연 美·EU 반독점 규제 등 복합 리스크 이어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회사 역사상 최장수 CEO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쿡 CEO의 리더십 하에서 애플을 상징하던 혁신의 동력이 약화하면서 인공지능(AI)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며 차세대 제품 개발까지 지연되는 등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의 규제 강화,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까지 복합적인 리스크가 겹치며 애플의 미래 성장에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망 전문가' 쿡 체제에서 혁신 성장 둔화
5일(현지시각) 이코노믹타임스 등에 따르면 팀 쿡 CEO는 지난 1일 기준으로 5,091일을 재임하며 스티브 잡스를 제치고 애플 역사상 최장수 CEO가 됐다. 2011년 고(故)스티브 잡스에 이어 애플의 수장이 된 쿡 CEO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으로 '공급망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취임 이후 경영 전문성을 바탕으로 '안정적 성장'에 초점을 맞췄고, 쿡 CEO의 리더십 하에서 애플은 괄목할 만한 재정적 성과를 거뒀다. 지난 14년간 판매한 아이폰만 2조 달러(약 2,781조원) 규모에 달하며, 2022년 1월에는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처럼 쿡 CEO가 재정과 글로벌 운영 능력 측면에서 보여준 공로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애플을 상징하는 '혁신의 DNA'를 잃어버렸다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는다. 잡스 시대에는 아이맥(iMac), 아이팟(iPod), 아이폰(iPhone) 등 세상을 바꾼 혁신 제품이 쏟아졌지만, 쿡 체제에 들어오면서 시장에 미친 충격과 변화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핵심 제품인 아이폰은 2019년 조너선 아이브 수석 디자이너가 퇴사한 이후 디자인과 기능 업데이트가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혁신에 대한 의문은 실적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3년간 애플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2.3%로, 같은 기간 알파벳 ·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MS)는 11~14%, 엔비디아는 80%에 달했다. 애플의 시총 역시 '빅5' 중 가장 느린 성장세를 보이며 엔비디아와 MS에 추월당했다. 특히 AI 부문에서 전략적 혼선이 두드러진다. 지난해부터 예고된 애플의 AI 음성비서 '시리'의 업그레이드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고, 지난 6월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WWDC)에서 공개한 생성형 AI 모델의 신규 기능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온 디바이스' 전략 AI 전환기에 한계 드러내
전문가들은 AI 전환기에 애플이 주도권을 상실한 배경으로 애플이 오랜 기간 고수해 온 '온 디바이스(on-device) 최적화' 전략을 꼽는다. 이는 아이폰이나 맥 등 자사 기기 내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점으로 내세웠으나,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모델의 크기와 속도 면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AI 주도권 경쟁에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쿡 CEO의 교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AI 기술의 부재는 차세대 주력 대표 제품의 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애플은 그동안 다양한 신사업을 모색하며 제품 개발을 투자해 왔지만, 최근 몇 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초 개발이 중단된 '애플카'다. 애플카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이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이어졌고, 결국 애플이 프로젝트를 접자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투자자는 안도했다. 이 외에도 스마트워치 자체 디스플레이나 카메라가 달린 애플워치, 맥에 연결하는 증강현실(AR) 스마트 안경 등의 프로젝트도 줄줄이 무산됐다.
AI 리더십 공백도 심화하고 있다. AI 파운데이션모델(AFM)을 개발한 루밍 팡은 메타로 이적했고, AI 책임자 존 지아난드레아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애플의 디자인 아이콘이었던 조너선 아이브는 오픈AI와 함께 '포스트 아이폰'을 겨냥한 AI 기기 개발에 나섰다. 주요 임원 다수가 쿡 CEO와 마찬가지로 60대에 접어든 가운데 회사의 미래를 이끌 젊은 피가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일부 젊은 리더들이 후계자로 거론되지만, 하드웨어와 AI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역을 장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평가다.

트럼프, 관세 앞세워 애플에 공급망 이전 압박
미국 빅테크에 대한 견제가 강화하면서 외부 환경도 악화일로다. 애플의 주 수익원인 구글 검색 수수료는 미국 정부의 반독점 소송으로 폐지 위기에 놓였고, 앱스토어 사업도 각국 정부의 규제에 직면했다. 앱 내 결제를 앱스토어로만 제한하던 정책이 ‘불공정 행위’로 지목되며, 앞으로는 웹사이트나 제3자 앱을 통한 결제도 허용돼야 한다. 특히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을 내세워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는 연간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플의 핵심 사업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중 관계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리스크는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플의 제조 시설을 미국 내 이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쿡 CEO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분산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막대한 이전 비용을 고려하면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 이전 시 아이폰 가격은 최대 3.5배 오른 3,500달러(약 487만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아이폰의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2023년까지만 해도 중국 내 애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위였지만, 2024년에 3위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5위까지 추락했다. 상위 5개 제조사 가운데 중국 업체가 4곳에 달했고, 4개 업체 합산 점유율만 65%가 넘는다. 미·중 갈등 심화로 중국 내 반미 감정이 커지면서 애국소비(궈차오)가 확산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올해 1월 자국 폰 소비 진작을 위해 6,000위안(약 116만원) 이하 스마트폰에만 정가의 15%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한 게 실적 부진의 촉매제가 됐다.
업계는 올해가 쿡 CEO와 애플 모두에 있어 관세 압박, 법적·정치적 도전, AI 경쟁, 공급망 재편 등 각종 위협이 한꺼번에 몰려든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주가가 최고점 대비 25% 떨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쿡 CEO의 리더십과 애플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2000년대 초반 애플에 의해 무너진 핀란드 통신업체 노키아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며 "애플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불렸던 '폼 팩터' 기술 혁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