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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소액면세제도 폐지 역직구 비중 높은 K뷰티 타격 예상 중국 대비 상대적 반사이익 기대도

트럼프 행정부가 소액 소포에 대한 관세 면제를 폐지하면서 한국 역직구 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될 관세는 곧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고, 이는 그간 빠르게 성장해 온 한국 브랜드들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서다. 특히 K뷰티는 최근 미국 내 한류 열풍과 맞물려 수요가 급증해 온 대표 품목으로, 이번 조치가 시장 성장에 제동을 거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00달러 이하 소액 수입품 면세 폐지, K뷰티 빨간불
5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드 미니미스(De Minimis·소액면세제도)’ 조항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부터 국제 우편망을 통해 미국으로 반입되는 모든 소액 소포에 관세가 부과된다. 시행 후 6개월간은 원산지 국가에 적용되는 관세율에 따라 종가세(한국의 경우 15%) 또는 품목당 80∼200달러(약 11만~28만원)를 정액 부과하는 종량세가 병행되고, 이후 종가세로 일괄 적용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 중국·홍콩발 소액 소포에 면세 혜택을 철회한 데 이어 이를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소액면세제도는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관세국경보호청(CBP) 업무 경감에 기여했지만, 테무·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급성장과 대중(對中) 무역적자 심화의 원인으로 꼽혀 그간 개편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한국도 이번 조치로 결국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는 미국 역직구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5%의 관세를 부담하기 위해 판매 업체의 가격 인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 가격이 올라가며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질 것이란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역직구액은 1조7,225억원, 이 중 미국의 비중은 전체의 20%로, 중국(56.8%)에 이어 2위다. 미국 역직구액은 2019년부터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76%에 달했다. 품목별로는 패션, 화장품의 성장률이 높았다. 두 품목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90.2%, 61%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자체 역직구 몰을 강화해 온 K뷰티 기업들도 성장세를 보였다. CJ올리브영의 ‘글로벌몰’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는데, 매출 증가분의 40%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2023년 출범한 아모레퍼시픽의 역직구 플랫폼 ‘글로벌 아모레몰’ 역시 지난해 전체 이용자의 70%가 미국인이었다. 아모레몰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26% 증가했고, 방문객은 72% 늘었다.
최근 한류 열풍에 힘입어 미국 내 K뷰티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향후 역직구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미국 소비자들이 K뷰티 제품에 지출한 금액은 17억 달러(약 2조3,600억원)로,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이 모든 수입 소포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K뷰티 업계에선 역직구 몰의 매출 및 고객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테무·쉬인 초저가 열풍 급제동, 美 소비자도 타격
실제 올해 5월부터 미국이 중국산 소액면세제도를 폐지한 후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쉬인의 미국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테무와 쉬인의 5월 일간사용자수(DAU)는 관세 발표 전인 3월과 비교해 각각 52%, 25% 감소했다. 이런 흐름은 앱스토어 순위에서도 확인됐다. 테무 앱의 5월 평균 순위는 1년 전 상위 3위에서 132위로 곤두박질쳤고, 쉬인 역시 한때 10위권이었던 순위가 60위까지 떨어졌다. 테무와 쉬인의 미국 광고 지출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센서 타워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테무의 미국 광고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87% 줄었고, 쉬인은 69% 감소했다.
그간 테무는 9달러 무선이어폰, 5달러 원피스 같은 초저가 상품으로 미국에서 인기를 끌어왔는데, 이런 가격이 가능했던 건 소액면세제도 덕이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테무의 모회사 핀둬둬는 수년 동안 실적이 치솟았다. 올해 1분기 기준 매출은 2023년 전년 대비 58% 증가했고, 작년 1분기에는 1년 전보다 131% 늘었다. 2022년 1분기 25억9,950만 위안(약 5,025억원)이었던 순이익은 작년 1분기 10배가 넘는 279억9,780만 위안(약 5조4,000억원)으로 뛰었다. 테무를 이용하는 미국인은 5,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미국 애플 앱 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 1위도 테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액면세제도 폐지와 관세 인상을 놓고 중국을 압박하면서 테무는 미국에 물류 창고를 보유한 판매업자들을 입점시키는 등 기존 전략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하는 블룸버그 세컨드 메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소액면세제도 폐지를 처음 밝힌 직후인 2월 5~10일 테무의 매출은 32% 감소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무의 전략 수정이) 라이벌인 아마존에 우위였던 가격 경쟁력을 사라지게 했다”고 보도했다.
타격을 입는 건 미국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배송비, 제품가격 인상 등 연쇄적 후폭풍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선 요즘 제품 값이 올랐다는 알림 메시지가 계속 뜬다. 아마존은 이용자들이 관심 품목으로 저장한 상품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장바구니 알림을 보내주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시작된 뒤 ‘내렸다’는 알림은 사실상 사라졌고, 생필품들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방 랩 가격은 14.97달러에서 17.67달러로 18%, 학용품인 물풀은 15.60달러에서 20.31달러로 30.2%, 체온계는 19.99달러에서 29.99달러로 50% 뛰었다. 모두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다.
'54% 관세' 中 비해선 반사이익
다만 업계에선 미국을 상대로 역직구 경쟁 관계인 중국에 비해 국내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중국 플랫폼의 경우 54%의 관세가 부과된 데 반해 국내 플랫폼의 관세는 15%로,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선 한국 제품의 가격이 오른 것보다 중국 제품의 가격 상승 폭이 더 크기에 한국 제품이 중국보다 더 가성비가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이번 조치로 한국 제품은 관세가 없는 미국 제품에 비해선 불리해졌으나, 중국 제품에서 눈을 돌리는 미국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기회는 열린 셈이다.
정부도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세 협상 타결과 행정명령 조치가 있던 지난달 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6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역직구 시장에 대한 규제 개선을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한류 열풍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역직구 시장은 여러 장애로 인해 성장이 매우 더디다”며 “반면 우리 국민의 해외 직구는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직구 시장을 넓히면 우리가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라며 “소관 부처에서 역직구 시장 확장을 위한 대책을 점검해 달라”라고 촉구했다. 이어 “우리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가 많다”며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관련 업계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뷰티나 패션 등 업계 전반의 목소리를 취합하며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면서 "행정명령 발효까지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제도 변화가 미칠 영향을 다양한 경로로 점검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전했다.